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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딛고 일어선 김춘희의 미국 이민생활
//hljxinwen.dbw.cn  2018-07-12 09:11:32

  (흑룡강신문=하얼빈)지난해 10월 24일 밤 11시 30분경, 재미 조선족교포 김춘희씨가 운영하는 조지아주 도라빌에 있는 <꼬치마루>식당에 3인조 흑인 무장강도가 침입하였다.

  퇴근하면서 <꼬치마루>에 들린 7명의 맛사지 녀성들의 돈을 노리고 추적해 온 무장강도들이 란발한 총에 김춘희사장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였다.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참변을 당한 김춘희씨는 앰블렌스에 실려가면서도 흘러내리는 산소마스크를 두손으로 꼭 잡고 <범에게 물려가더라도 정신만은 놓치 않는> 인내와 용기로 위기를 간신히 극복했다.

  천명이라고 할까? 담당수술의사는 미세한 차이로 김춘희가 영구성 척추마비를 면하였고 다리도 불구가 될 위험에서 벗어났다면서 기적이라고 하였다.

  미국 련방정부에서는 김춘희에게 무료로 최고의 의료설비혜택을 제공해 주었고 지금까지도 담당의사가 따로 있어 정기적으로 체크하고 수시로 심리상담도 받을수 있게 했다.

   이국타향에서 가장 힘들때 고마웠던 그 이름- 조선족

  사경을 헤매다가 수술을 마치고 마취약에서 깨면서 그가 간신히 혼미상태에서 눈을 떠보니 아틀란타 조선족협회 여러분들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김춘희씨가 사경에서 헤여나올것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날 밤 협회 어떤분들은 사고소식을 접하기 바쁘게 자정이 지났음에도 한달음에 <꼬치마루>에 달려가 CCTV 모니터를 돌려보며 상황파악을 하였다.

  그가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조선족협회분들은 이민생활의 고된 하루일과를 끝마치기 바쁘게 너도나도 찿아와 밤새도록 곁을 지켜주기도 하고 온정이 담긴 손으로 상처입은 다리를 정성껏 맛사지 해주기도 하였다.

  그들은 김춘희와 함께 울어주고 아파하며 위로해주었는데 그중에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초면의 분들도 있었다.

  김춘희는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그동안 이민생활이 고달프다는 리유로 시간적으로 마음적으로 여유없이 지냈던 자신을 뒤돌아 보게 되였고 끈끈한 동포애를 베풀어준 조선족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금할수가 없었다.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쳤던 한달

  수술도 잘되고 한달가량 지내다가 김춘희씨는 좀더 지켜보자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원하였다. 그러나 총알이 스쳐지나면서 몸의 신경들을 강하게 자극한 탓으로 극심한 진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허리는 끊어질듯, 창자는 비틀어 짜듯 아팠고 다리는 예리한 송곳으로 연신 찌르는것 같았고 발바닥까지 불로 지지는 듯, 칼로 저며내는듯 아팠다.

  신경통에는 특이한 치료방법보다는 시간이 약이라 하였고 진통약을 먹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극심한 통증속에서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눈물을 흘리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그는 “내 나이 지금 50대인데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였고 목숨을 살려준 의사가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며 그때의 처절했던 아픔을 하소연하였다.

  한달이 지나가자 아주 미약하게나마 진통이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또 엄연한 새로운 과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꼬치마루>식당을 어이 할것인꼬?

   미국이민의 애환과 꿈이 담긴 <꼬치마루>

  <훈춘시 로력모범>상까지 수여받으며 김춘희는 훈춘 밀강에서 27살때부터 10여년간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식당을 잘 운영하여왔다.

  2002년 2월, 시골에서 벗어나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지인의 소개로 미국행에 나선 그는 국경을 넘을 때에야 비로서 자신이 불법체류자 신분이라는것을 알게 되였지만 후회막급이였다.

  뉴욕일대에서 그는 네일가게, 식당, 사우나 등 업소들에서 궂은 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억척스럽게 일하였다.

  2007년에 아틀란타로 자리를 옮긴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체로 식당을 꾸려볼 꿈을 지니게 되였고 그 꿈너머에는 중국에 있는 딸을 미국에 데려다가 교육시키려는 더 간절한 꿈이 있었다.

  그는 미국 음식을 만드는 기술을 배워보려고 타지에 갔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무보수로 일만 열심히 해주다가 돈은 돈대로 날린채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언어와 문화장벽은 높기만 한데다가 신분문제마저 해결되지 않아 운전면허증은 물론 영업허가증도 받을수 없는 여러가지 서러움과 불편함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변식 식당을 꾸리고저 어렵사리 한국인 비지니스 파트너를 찿아 동업을 하게 되였다.

  영업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건물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했고 배수처리, 실내 연기처리 등 엄격하고 까다로운 절차들을 하나하나 통과하는데만 무려 7-8개월이나 걸렸다. 그 와중에 고맙게도 건축업에 종사하는 조선족교포분이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어서 큰 힘이 되였다.마침내 미국에 온지 10년만인 2012년에 김춘희는 양고기 뀀을 위주로 감자밴새, 옥수수 국수 , 순대, 양탕, 여러가지 무침 … 등 연변음식을 위주로 한 특색있는 <꼬치마루> 식당을 버젓하게 오픈하였다.

   딸에게 미국류학의 길을 개척해주다

  자녀교육에 대한 우리민족의 관심과 열정은 언제나, 어디서나 한결같고 눈물겹다.

  경제적인 뒷받침이 마련되자 그는 자나깨나 소원이였던 딸을 미국에서 공부시킬수 있는 꿈을 실현할수 있게 되였다.

  조지아주 대학에 입학한 딸은 처음에는 언어관을 넘지 못해 매우 힘들어 했지만 모녀간에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면서 각고의 노력을 다한 보람으로 지난해 5월에 훌륭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게 되였다.

  그동안 딸의 학비마련을 위하여 김춘희는 무려 5년동안이나 땀방울을 쏟아가며 일년 365일 날마다 식당문을 열었다.

  꼬치마루는 날이 갈수록 많은 손님들의 발길을 끌어모았으며 인터넷에도 칭찬의 리뷰들로 가득차 있다.

  그는 “모든 연변 음식들은 여기 손님들의 입맛에 맞추어 재개발하였고 준비해놓은 음식이 혹시라도 제맛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버린다” 고 하였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딸이 고생하는 엄마에게 수차례 강권하여 작년 3월부터 겨우 월요일을 휴식일로 정하게 되였다.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난 여강자

  김춘희의 꿈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꼬치마루>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뒤 종업원들이 뿔뿔히 도망갔고 두달이 넘도록 문을 닫을수 밖에 없었다.

  12월 27일, 그는 더 이상 아플수가 없어 자리를 털고 오뚜기처럼 일어섰다.

  그러나 식당문앞에 이르기도 전에 마음에 앞서 온 몸이 먼저 전률을 일으키며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는 일주일간이나 그렇게 공포에 떨면서 매일 식당문앞에서 배회하다가는 집으로 돌아가군 하였다.

  <더 이상 흔들릴순 없어! 죽음도 이겨냈으니 모든걸 이겨낼수 있어! > 김춘희는 다시 한번 강하게 마음을 추스리고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용감하게 식당문을 활짝 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그사이에 손두께만큼 들어앉은 책상위의 먼지를 닦아내고 상처받은 허리를 바로 펴지도 못한채 아픈 다리를 끌면서 빡빡 문지르고 닦아내고 쓸어내면서 하루에 서너시간씩 며칠에 걸쳐서 대청소를 하였다 .

  2018년 희망찬 새해를 맞아 1월 9일, 김춘희씨는 사고를 당한지 두달반만에 비록 몸이 완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쓰러졌다기도 다시 일서서는 오뚜기인양 꼬치마루를 다시 오픈하였다.

  <아틀란타 168 >중국인 정보넷에서는 김춘희씨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호소하였고 조선족협회 담당자도 위챗에 소식을 알리면서 뜨거운 성원을 부탁하였다.

  올해 2월달에 있은 미주동남부 조선족협회 설날맞이 대잔치에 김춘희씨는 언제 사고를 당했던가 싶게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참석하였다. 그는 웃음꽃을 피워가며 덕담을 나누고 흥겨운 노래와 춤을 선물하여 조선족동포들과 더불어 여강자의 인간승리의 기쁨과 감동을 뜨겁게 나누었다.

  김춘희는 아직도 흐리고 비오는 날씨면 신경통과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는 새롭게 찿은 보귀한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건강의 중요성을 온 몸으로 터득하며 파란곡절 많은 이민생활의 여정을 힘차게 활보하고 있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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