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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골에 둥지 튼 ‘마화장사' 용남이
http://hljxinwen.dbw.cn  2017-11-08 08:56:19

  어머니 모시기 위해 공장 접고 농민으로

  (흑룡강신문=하얼빈)“마화장사부터 시작했지요. 배운 것 없는 놈이라 연길에 와서 할 일이 없었지요.”

  고향인 길림시 영길현 대수하진 신립촌에서는 꽈배기로 불리였지만 연길에서는 마화(麻花)로 많이 통해서 지금도 마화라는 단어가 불쑥불쑥 나온다는 용남이는 가정에서 3남1녀중 막내로 태여났다.

  1988년 여름, 초중 졸업을 앞두고 째지게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고중 진학을 포기한 그는 부모와 형제들을 떠나 산 설고 물 선 연길로 진출했다. 말이 진출이지 15살 어린 그에게는 할 일도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당시까지 빈민굴로 불리던 연길시 철남의 어느 단칸방에 세를 맡은 용남이는 일단 투자가 적게 드는 꽈배기장사를 하기로 작심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사람들과 학교 가는 아이들을 상대로 손을 홀홀 불면서 꽈배기를 팔기 시작하였는데 차츰차츰 규모가 늘어나더니 매장도 갖추고 직원을 두기 시작하면서 어린 나이에 ‘사장님’으로 될 때까지 자그만치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그에게 고민거리가 생겼다. 15명의 직원을 먹여살리기엔 무대가 너무 작았고 그럭저럭 먹고 살 수는 있으나 큰 사업으로 확대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느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에 고민을 하던 그는 개혁개방의 전초지라 불리는 심수행을 선택했다. 1992년 19살 나는 용남이가 큰 꿈을 안고 달려갔던 심수는 동북 시골에서 달려온 용남이를 썩 반기지 않았다. 초중학력에 경험이라야 4년간의 꽈배기장사가 전부였던 용남이는 심수에서 꽈배기와 짠지장사를 시작했지만 까다로운 남방사람들의 입맛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그는 단연히 2년간의 심수생활을 접고 상해로 와서 친구와 더불어 가방장사를 시작하였다. 21살 혈기방강한 용남이는 성공과 실패 사이를 오가면서 점차 성숙되여갔다. 상해에서 가방장사를 하면서 기술을 익히고 판매망을 넓히던 그가 청도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은 청도의 인건비가 상해보다 절반이나 쌌기 때문이였다. 당시 청도는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청도붐이 일어날 정도로 한국인들이 많이 몰려들었고 동북에서 자란 조선족청년들이 동경하던 곳중의 하나로 되였다. 1996년에 청도에 공장을 옮긴 그는 아이들이 메는 작은 가방부터 비행기에 올라가는 짐가방에 이르기까지 수십종의 크고 작은 가방을 생산하면서 경영 규모를 확대하고 로동자도 수백명으로 늘구면서 그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청년기업가로 거듭났다.

  “그 때부터 무슨 일을 시작하든지 조심성이 생겼지만 일단 시작하면 자신감부터 생기더라구요.” 시장 조사와 판로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일을 시작하기 좋아하는 그는 내밀성이 좋고 통이 크다는 평까지 들었다.

  그러던 그가 연길에 다시 돌아오게 된 계기는 부모님이였다. 그가 연길을 떠나기전에 누님이 연길에 와서 그의 일손을 돕고 큰형과 둘째형이 한국에 나가다 보니 영길 시골에는 년로한 부모님만 계셨다. 그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던 그는 1996년 부모님을 룡정시 조양천진 봉림촌에 모셔왔고 170대의 사과배나무를 도급 맡아 사과배 재배를 하면서 만년을 보내게 하였다. 외지에 있는 기간 용남이는 해마다 안해와 함께 봉림촌을 찾아 부모님과 함께 설명절을 쇠군 하였다. “제가 집에서 막내다 보니 부모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지요.” 그 때를 회억하는 용남이의 눈가에 이슬이 반짝이였다.

  아버지가 간암말기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것은 2013년 여름이였다. 회사일을 직원들에게 맡기고 곧추 연길로 달려온 용남이는 병원에서 아버지 병시중을 들면서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는지 모른다. 형님과 누님이 회사일을 돌보라며 등을 떠밀었지만 아버지 마지막 길을 어찌 홀로 보내겠느냐며 이듬해 4월까지 그는 아버지 곁을 지켰다.

  아버지가 돌아간 후 용남이는 차마 홀로 된 어머니를 두고 청도에 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가꾸던 과수원을 다른 사람한테 양도하려고 했지만 년로한 어머니가 청도에도 안 가고 경로원에도 안 간다고 딱 잡아뗐다…

  이것이 그가 청도의 회사를 정리하고 연길에 돌아온 리유다. 봉림에 짐을 푼 첫 1년간 용남이는 도급 맡은 170대의 사과배나무를 가꾸면서 재래식 경영으로는 과수원에서 수입을 올릴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과배를 재배하는 농호가 늘어 가격이 떨어지고 판매가 어려운 등 어려움도 겪어야 했던 것…

  ‘사과배체험농장을 꾸리자, 모아산을 찾는 유람객들이 리용할 수 있는 사과배체험농장을!’ 모아산자락에 자리잡은 과수원은 천혜의 지리적인 우세가 있었다. 모아산 등산길 길목에 자리잡다 보니 배철이 되면 과수원을 기웃거리는 유람객들 때문에 과농들은 이른 아침부터 과수원을 지켜야 했다. ‘차라리 대문을 활짝 열고 그들을 불러들여 마음껏 체험하게 하자’는 게 그의 생각이였다.

  그해 여름 그의 과수원 주변에는 여러가지 체험시설이 들어앉았고 유람객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였다. 사과배가 무르익는 가을이 되자 한달도 되지 않는 사이에 그의 사과배는 나무에 달린 채로 한근에 3원씩 체험객들에게 몽땅 팔려나갔다.

  그의 구상은 실험을 통해 희망으로 다가왔다. 청장년이 없는 마을에 과수합작사를 세운 것은 바로 그 이듬해였다. 2만여대의 사과배나무가 유람객들에게 체험농장으로 개방되였고 찾아온 손님들의 입을 통해 봉림의 사과배가 맛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소음이 없이 조용하고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큰 모아산 골짜기에서 나는 사과배는 껍질이 얇고 물이 많아 시원하고 달콤하다.

  거기에 철에 따라 오얏 9,000여그루, 옥수수 10쌍, 개암 8,600그루 등을 체험내용에 보충하다 보니 용남이네 농장은 명실공히 봄부터 가을까지 체험객들이 찾는 농장으로 되였다. 사과배꽃이 필 때부터 체험농장을 찾아 꽃구경을 하고 달래를 캐는 사람들로 용남이는 체험객 접대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사과배가 다 팔린 요즘에도 용남이는 매일마다 바삐 돌아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어머니에게 문안하고 나가면 저녁에야 들어오는 용남이다. 봉림에 돌아와서부터 구상하였던 겨울철 체험농장 건설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2015년 겨울철 체험농장을 꾸리려고 묵여두었던 다락밭에 6,000평방메터 되는 남새하우스를 건설하는데 모든 설비와 재료 구입, 설계, 조작, 검수에 이르기까지 용남이의 손이 가지 않는 곳이 없다.

  “11월 중순에 하우스가 완공되면 도마도, 딸기, 가지, 배추, 고추, 오이, 마늘 등 여러가지 남새 파종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늦어도 12월 중순부터 체험객들을 맞이할 것 같습니다.” 마을사람들로 조직된 일군들을 지휘하여 하우스 구조물을 올리던 용남이가 하는 말이다.

  겨울철 체험농장 구상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백프로 유기농 재배로 시민들이 시름 놓고 드실 수 있게 한다는 게 저희 생각입니다.” 거기에 명년에는 복숭아, 포도, 살구, 사과 등 하우스에서 재배할 수 있는 과일체험 하우스도 건설하게 되는데 이런 하우스를 점차 20개로 늘군다는 타산이다.

  “요즘은 말 그대로 위챗세상이 아닙니까? 초중시절 친구인 김춘일씨와 합작하여 희락방(喜乐帮)이라는 위챗쇼핑몰을 개설하고 저희 농산물을 팔기 시작했어요. 체험을 통해 팔리는외의 모든 농산물은 위챗을 통해 전국 각지로 배송됩니다.”

  “아들과 함께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셋째며느리는 만족이라 해도 조선족과 다름이 없어요. 나를 공대할라, 남편을 공대할라, 고생이 많아요. 그래도 항상 웃는 낯으로 사람을 대하니 온 동네서 모범며느리라 엄지를 내들어요.” 올해 76세 나는 문련옥할머니는 아들보다 며느리 자랑을 하기 좋아한다.

  어머니를 잘 모시기 위하여 어머니가 정들어버린 봉림촌에 돌아와서 저도 모르게 농민기업가로 탈바꿈한 김용남(45)씨는 “아버님 생전에 잘해드리지 못한 효도를 어머님에게 보충한다는 마음으로 항상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는 일마다 힘들지 않고 뜻 대로 잘 풀리기만 하네요.” 하면서 맑은 웃음을 웃는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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