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로  ·로그인 ·회원가입 ·정보수정 | 일간지 | 주일특간 | 한국판 | 다국어무역 |   
 
   ·中文 ·English ·俄文 ·日文
 
    전체기사  |  흑룡강  |  정치  |  경제  |  사회  |  한민족사회  |  국제  |  진달래 작가방  |  톱 기사  |  사설·칼럼  |  기획·특집 PDF 지면보기 | 흑룡강신문 구독신청
您当前的位置 : > 인물
한국가리봉 동방노래방 방서윤의 살아 온 이야기
http://hljxinwen.dbw.cn  2017-05-19 08:18:33

  (흑룡강신문=하얼빈)허강일 기자 = “포기하지 마세요. 성공할 겁니다.”

  이는 바로 혹독한 가난을 이겨내고 홀로서기에 성공한 방서윤(본명 방순녀 53세)씨가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고향이 화룡시 로과촌인 방서윤씨는 딸 하나를 데리고 재가해 온 엄마와 주정뱅이 아버지 사이에서 둘째딸로 태어나 갖은 고생을 다 겪었다.

  문화대혁명때 파놓은 방공호 위에 자리잡은 오두막 같은 집은 비가 올 때마다 조금씩 기울어졌고 비물은 집안으로 거침없이 흘러들었다.

  서발 막대기 휘둘러봤자 걸릴 건 15촉 전등밖에 없는 살림집, 20여 제곱미터 되는 자그마한 집에 일곱식구가 오밀조밀 살아가면서 그녀는 사랑하는 셋째동생이 가난때문에 요절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재수하면 붙을 수 있는 대학공부도 포기해야 했다. 동생들을 공부 시켜야 했기 때문이였다.

  든든한 남자 일손이 그리웠던 집안에 남자식구를 들인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20세의 나이에 결혼을 선택, 결혼적령기가 안되었기에 그녀는 혼인신고도 못한 채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았다.

  그러나 결혼 2년만에 남편은 채석장에서 사고로 한쪽 손과 한쪽 눈을 잃은 페인으로 되고 말았다. 나젊은 엄마의 가슴 산산쪼각이 나고 말았다. 그렇다고 주저앉을순 없었다.

  아들만은 당차게 키운다는 마음으로 방서윤씨는 걸음마를 타는 아들을 데리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현성에 가서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품팔이를 하였고 이자돈을 꿔 두바이에 가서 4년간 땀을 흘렸으며 2004년도에는 한국행을 선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나온다는 건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위장 결혼으로 나왔어요.”

  풍상고초를 겪을만큼 겪은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혼자가 아닌 부모형제들의 행복을 위해 그녀는 위장결혼으로 한국에 나왔고 또 형제들을 모두 한국에 끌어왔다. 한국전자회사에 취직한 그녀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진취심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 품질검사 담당으로 근 10년을 일했다.

  가난의 굴레는 벗어던졌으나 성공이라는 두글자를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았던 그녀는 만족할수없었다.

  2014년 2월, 한국진출 10년만에 방서윤씨는 회사를 사직하고 가리봉시장 입구에 동방초두부 집을 차리고 밥상 4개로 첫 창업의 스타트를 뗀다. 주방장도, 서빙하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시작한 것이다.

  다른 초두부집에서는 두부를 만들어놓고 팔았지만 그녀는 즉석 초두부를 개발하여 손님들이 오는 족족 따끈따끈한 것을 만들어 올렸다. 손님들의 반향이 굉장히 뜨거웠다.

  방서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콩비지개발에 착수, 땅콩을 적당히 섞어 만든 콩비지는 손님들이 집에 사가지고 갈 정도로 소문났다. 동방초두부는 가리봉에서 알아주는 두부집으로 되었다.

  단골손님들이 늘어나자 욕심이 생긴 방서윤은 규모있는 음식점을 임대한다.

  “혼자 할 때에는 아무런 부담도 없었는데, 일군을 여럿 쓰면서 해보니까 장난이 아니었어요. 결국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방서윤씨가 수줍게 웃었다.

  본전은 물론 집에 모아두었던 종자돈마저 다 날렸다. 앞길이 캄캄했고 죽고 싶었지만 가난의 멍에를 벗어버리기 위해 아까운 청춘까지 희생하며 살아온 지난날을 생각하니 차마 죽을 순 없었다.

  날마다 일기장에 성공이라는 두글자를 써가며 방서윤씨는 아침을 열었다. 자존심을 다 버리고 막벌이에 나섰고 동산재기의 순간을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꿈을 가진 사람에게는 언제든 백락이 나타나게 되어있다. 동방초두부집의 단골로 방서윤씨가 주방과 홀을 넘나들며 혼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던 건설회사의 이사 한분이 성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성공에 대한 갈망으로 활활 타오르는 방서윤씨의 눈길과 성실한 인격을 믿고 투자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열심히 살아왔던 모든것이 이렇게 씨를 뿌릴줄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런 날을 바라고 내가 이를 악물고 살아왔나 봅니다.”

  방서윤씨의 얼굴에는 고난의 흔적이라곤 티킅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행복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2016 년6월, 시골 마을에서도 가장 못 살던 집안의 둘째 딸 방서윤씨는 한화 1억7천만원을 들여 새롭게 장식한 동방노래방사장으로 변신한다.

  동방노래방은 40여명 단체고객까지 받을 수 있는 대형 룸을 포함해 6개의 크고 작은 룸이 있으며 가리봉지역에서 가장 화려하고 고급스러우며 규모가 있는 노래방으로 알려져있다.

  친구처럼, 동향처럼 맞아주고 바래주는 그녀의 모습에 동방노래방은 성업을 이어갔고 방서윤씨는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CEO로 세상과 만나게 되었다.

  “가슴 아팠던 실패가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못 살고 힘들었던 때를 생각하면 이겨 못 낼 어려움이 없어요.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꼭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때에도 부모형제들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베풀며 살았던 지난 시간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하였다.

  짬짬히 시간을 내여 자기의 인생 경력을 드라마로 쓰고 있다는 방서윤씨, ‘사람은 생각한 것만큼 행복해진다’는 말을 떠올려보면서 취재노트를 접었다.

  


· 효도의 최선책、차선책、차차선책 및 발전책
· 제70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단 공개
· 제70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단 공개
· 한중최고경영자과정 날따라 활성화
· [오늘의 운세] 5월 16일
· 길림성정부 모바일 클라이언트 개통운행
· 무인기 관리 강화, 6월 1일부터 실명등록제 실시
· 올해 8만명 특수일터교사 초빙 계획
· 2020년까지 우리 나라 15만명 전과의사 양성
· 돈화시 안명호진 "삼림문화발견타운"에 입선
포토
제70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단 공개
세계에서 몸이 가장 긴 고양이…길...
해외 여행갔다 여중생 살린 간호사....
추위 속 유기견에 침대 제공…특별...
동영상
기획·특집
·발전 역사를 뒤돌아보며 당대회를 ...
·2015 전국인대정협특집
·시진핑 주석 방한 특집
·2014년 전국 인대 정협 회의
·당의 군중노선교육실천 활동
흑룡강신문사 주소(黑龙江新闻社地址):흑룡강성 하얼빈시 도리구 경위2도가 97번   흑룡강신문사 편집사무실(编辑办公室): 0451-84270983   취재부(供稿中心):0451-84223554    인터넷부(多媒体部):0451-84212364   사무실(办公室): 0451-84212964   흑룡강신문사 한국지사(韩国支社): 02)782-8881 782-8868   북경지사(北京支社):010-64632663   청도지사(青岛支社):0532-87890320   연대(烟台):133-6535-3926   위해(威海):152-6312-8669   요녕지사(辽宁支社):024-23490970   연변지사(延边支社):0431-2552832   장춘지사(长春支社):0431-8560-0428
회사소개 | 흑룡강신문구독 | 광고안내 | 제휴안내 | 기사제보 | 편집기자채용 | 고객센터 | 저작권규약 |역사자료 黑ICP备10202397号
Copyright @ hljxinwen.cn. All Rights Reserved
hljxinwen.cn의 모든 콘텐츠(기사) 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므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방송 텔레비전 프로 제작 경영 허가증 (흑)자 제0008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