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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민 PD의 “못난 샛길인생”
http://hljxinwen.dbw.cn  2017-04-20 08:22:23

  (흑룡강신문=하얼빈)상해 70, 80후 시리즈 여덟 번째 편, 이번에는 길 위의 인생 김상민 PD의 이야기이다. 김상민 PD는 상해재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무난히 직장생활을 하는가 싶더니 어쩌다가 샛길로 새어 방송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늦바람이 용마름을 벗긴다”더니 늦깍이로 시작한만큼 PD라는 직업의 매력에 푹 빠져 일년의 절반시간은 길에서 보낸다고 한다. 촬영할 때는 새벽을 깨워야 되고, 편집할 때는 밤을 하얗게 새워야 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직업, 그래서 그 분야에는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사는만큼 삐딱하고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의 인생을 도마위에 올려놓고 “샛길인생, 개똥철학”이라고 칼탕치며 자조하는 김상민 PD, 예사롭지만은 않은 김상민 PD의 좌충우돌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본다.

  ▲네팔 촬영 중 현지인과 함께(2017년 3월)

  김상민 PD(1973년생)와의 인터뷰는 위챗 대화를 통해 진행되었다. 상해에서 글로 만났던 언니의 남편이라 뵌적은 없지만 가끔 이런저런 얘기들을 단편적으로 전해들으며 꽤 잼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던 차에 언니를 통해 인터뷰 섭외에 들어갔다. “글쎄~ 그 인간이 이런거에 관심있어 할라나? 물어는 볼게”하던 언니의 예상과는 달리 김상민PD는 선선히 인터뷰에 응했다. 본인의 말을 빈다면 “안해본 짓거리에 대한 직업적인 호기심”이 작동하지 않았을가 싶다. 인터뷰 중에 느꼈던 인터뷰이의 개성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이번 글은 문답 형식으로 정리하며 편리상 김상민 PD를 김으로, 필자를 곽으로 칭한다.

  곽: 반갑습니다. <지행자>공중계정에 발표했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굉장히 낙천적이고 재미있으신 분 같았어요. 김피디님의 직업과 인생 스토리가 궁금하네요.

  김: 굉장한 미녀작가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사실 <지행자>에 쓴 글은 마누라 협박에 의해 썼어요. 글 안쓰면 밥을 안준다고 해서요. 떠돌이 인생인 저에게는 집밥이 엄청 중요한거거든요. 밥을 안준다는건 꽤 겁나는 협박이에요. 하하~ 저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셔서 살아온 인생필름을 한번 되돌려 봤는데 아무리 털어봤자 정말 먼지밖에 없네요. “못난 인생 시리즈” 빼고는 별로 할 얘기가 없습니다만 그래도 맨날 남들 인터뷰 하다가 인터뷰 받는 기분은 어떤건지 한번 느껴보고 싶어서 선뜻 응했어요. 잼있을거 같아서요.

  곽: 못난 인생이 훨씬 더 매력적입니다. 일단 자기소개부터 해주시죠.

  김: 저는 버스를 타려고 해도 큰 길까지 몇리길을 걸어야 했던 장춘 주변의 편변한 조선족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동네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와 농사짓는 어머니의 훈육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등떠밀려 공부를 하다보니 상해에 있는 대학에 오게 되었고 벌써 상해에 20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경제를 배우면 돈 많이 벌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탈출 할수 있을거라는 착각으로 전공으로 경제학을 선택했었는데 아직까지 돈은 돈대로 못벌고, 여차여차 방송노가다판에 뛰어들어 일년중 절반은 길에서 헤매는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말씀드리고 보니 이게 사주에는 있는건지 한번 찾아봐야 되겠네요. 하하~

  대학 동기 중 알리바바그룹 CEO 하는 친구며 대학교수 하는 친구며 앨리트들이 즐비해요. 소위 잘나가는 동창들 소식을 전해들으면 나는 뭐하고 있는거지 하고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들 중의 누군가가 “나랑 직업을 바꾸지 않을래?”하고 물어보면 주저할거 같네요. 저는 그 친구들만큼 권력도 명예도 돈도 없지만 세상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누비며 사람들이 사는 다양한 모습을 통해 인생을 배워가는 지금의 내 삶이 나쁘지 않은것 같습니다. 인생에는 순간순간 반전이 숨어있는 것 같아요. 제가 여기까지 온것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결과인듯요. 이런 반전도 섭리라면 섭리라고 할수 있으니 그 스릴을 맘껏 즐기려고 합니다

  곽: 방송에는 어떻게 입문하게 되신건가요?

  김: 사실, 처음부터 방송일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아무래도 전공이 전공인지라 대학을 졸업해서 몇년동안은 한국계 상사에서 두루 근무를 했고 그때 당시로는 대접도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점점 적성에 안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서 사표를 냈어요. 후에 광고회사에서 방송관련 업무를 했던 마누라를 만나면서 이런 분야의 일도 있구나 어깨너머로 기웃거리다가 2008년 올림픽을 계기로 아낌없이 많은 조언을 해준 선배피디를 만나 본격적으로 방송에 입문하기로 마음을 굳혔어요. PD150이라는 요즘은 도태된 카메라 한대를 들고 촬영과 편집의 기본기를 익혔어요. 이 바닥 일이 원래 몸으로 부딪치며 배워야 되는거라 좌충우돌하면서 열심히 현장을 뛰었어요. 내가 감정이입을 하여 찍어온걸 내가 편집하고 그걸 또 방송으로 확인하는 느낌은 꽤 중독적이였어요. 그렇게 30대 중반의 나이에 늦깎이 PD인생을 시작한 셈이죠. 그때 영어공부한 밑천으로 외국계 회사에 들어갔더라면 아마 또다른 인생을 살았겠죠. 불장난이 숲을 태운다고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 밥줄이 되어버렸네요. 또 한번의 반전인 셈이죠.

  곽: 근데 외모는 확실히 PD처럼 생기셨어요. 회사맨은 아무래도 안어울리는거 같아요(웃음). 주로 어떤 프로그램들을 만드시나요?

  김: 그건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제가 좀 소도적처럼 생기긴 했어도 양복 입으면 양복도 나름 잘 어울려요. 하하~ 저는 주로 교양쪽의 프로그램들을 많이 접했어요. 방송은 크게 드라마, 예능, 교양 등으로 분류를 하는데 그 중에서 교양의 비중이 제일 적습니다. 제작비도 제일 적구요. 저는 교양분야의 프로그램들은 다양게 접한 편입니다. 휴먼다큐멘터리를 제일 많이 했고 려행프로, 동물프로도 했고 문화유산 관련 다큐도 만들었어요. 최근에는 뉴미디어(新媒体)용 미니 다큐도 만들고, 홍보영상도 만들어요. 그래도 명색이 가장인지라 생활비는 조달을 해야 출장 마치고 집에 오면 밥 달라고 마누라한테 당당히 요구할수 있어요. 하하~

  곽: 보통 하나의 프로그램을 완성하시려면 시간이 얼마 정도 걸리나요?

  김: 프로그램마다 상황이 달라요. 다큐멘터리 한 편 하는데 일년 반 동안 허리띠 졸라매고 버틴 적도 있었고, 일주일에 1회씩 방송되는 정규 프로그램을 할 때는 납품기일을 맞추느라 팽이처럼 돌아쳐야 돼요. 한동안 한국에서 홍콩CETV(华娱卫视)의 려행프로를 만들면서는 조선족들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9일동안 11분짜리 열 개를 촬영하고 편집까지 다 마쳐서 스탭들 중에 괴물로 통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건 분명 자화자찬인데 이 속도는 기니스세계기록에 올라야 돼요. 하하하......

  곽: 그럼 주로 한국과 일을 많이 하시나요?

  김: 꼭 그렇지는 않아요. 방송에 입문시켜주신 멘토피디가 한국인이라 그분 프로젝트에 많이 참여하다나니 한 4년 동안은 한국에 많이 왔다갔다 했어요. 정말 소중한 경험을 많이 쌓았어요. 그러다가 아무래도 중국방송의 수요가 훨씬 더 큰 관계로2년전부터는 주로 중국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양국이 방송마인드나 방송시스템이 달라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구요. 지난해 5월에는 영국 BBC 일도 했구요, 예전에 일본 NTV 랑도 잠간 일했어요. 프리랜서 피디니까 자유로와요. 본인이 잘할수 있는 아이템을 선정해서 할수 있죠. 이제는 돈 되는 아이템을 우선시 해야 되는 나이인데 아직도 꽂히는 아이템 우선이라 골치 아파요. 하하~

  곽: “사랑스러운 중국인(可愛的中國人)”이라는 기획도 하신다고 하셨는데, 어떤거죠?김: 사실 이건 방송용이라기보다 그냥 촬영 중에 만난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들을 기록해주고싶은 거에요. 사실 방송에 얼굴 내밀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근데 아시다싶이 사실 한 나라의 근간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그런 상층구조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밑바닥에서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민초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은 누가 알아주길 바라지도 않고 그냥 터벅터벅 자기 삶을 살아가는건데 그 삶이 눈물나게 아름다울 때가 있어요. 그런 분들의 인생이 그냥 묻히는게 아쉬워 기회가 되면 그런 분들이 자기 자식에게 넘겨줄 기념영상이라도 만들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사진쟁이가 길을 가다가 맘에 끌리는 케릭터가 있으면 기꺼이 사진을 찍어 주는거랑 같은 맥락이죠. 방송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아무래도 그분들의 인생이 어느정도 연출이 되고 포장이 되잖아요. 다큐를 만들면서 가장 경계하는 거지만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딜레마에요. 2010년에 “태양의 눈물, 타수화(打树花)”라는 다큐를 만들면서, 2015년에 “옷차림으로 보는 중국(服装里的中国)”라는 미니다큐를 만들면서 만났던 사람들도 아직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어요. 방송을 떠나서 그들을 위해 솔직담백하게 그분들의 가장 진실한 모습을 담아주고 싶어요.

  곽: 지금껏 PD일을 해오시면서 특별히 인상에 남았던 작업은 없었나요?

  김: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 했던가요? 사실 단 3분짜리 미니다큐 하나도 힘들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 품이 많이 들고 힘들었던 프로젝트일수록 기억에 남죠. 같이 일하는 스탭들이 저에게 일 쉽게 하고 주변을 덜 괴롭히는 스타일이라고 종종 그러는데, 전 단 한 번도 이게 쉽구나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촬영할 때면 극도로 긴장하고 예민하고 숨이 턱턱 막힐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언제가 무슨 통계를 본 적이 있는데, PD가 여러 업종 중에 수명이 가장 짧은 직종이라고 하더군요. 크게 머리가 끄덕여졌어요. 확실히 그래요. PD라는게 자기 나름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득도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이에요.

  곽: 우리가 안방에서 덤덤하게 보는 방송 장면 하나하나에 참 많은 사연들이 있을거 같네요?

  김: 그렇죠. 그냥 만들어지는 장면들은 없죠. 영상 1초가 사진 25장으로 이루어집니다. 그걸 하나하나 쪼개보며 거기에 섞일 현장음, 음악, 그리고 각종 효과 등등을 생각해야 돼요. 입안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심장이 조여오는 일이죠. 가끔은 생사를 걸고 담아오는 장면들도 있어요. 2008년도에 사천문천대지진(四川汶川大地震) 현장에 가서 그 수많은 시체더미들을 보며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어요. 그후 시골에 사는 탄광광부들을 따라 지하 700미터의 갱도에 들어가서 얼기설기 엉켜있는 깜깜한 갱도속에서 혼자 길 잃어버려서 이제 이렇게 죽는구나를 실감한 적도 있죠. 살아있는다는건 굉장히 큰 축복이고 행운이라는 배우는 순간들이죠.

  곽: 아! 일반인들은 경험하기 어려운 생생한 체험을 하셨네요. 그런데 그런 곳에 가시기 전엔 걱정 같은거 안 하시나요? 여진(餘震)이 있을 수도 있고 집에 계시는 가족도 생각하셔야될텐데요......

  김: 천직이란 건 누군가 시켜서 하거나 이것저것 고려해서 하는게 아니고 그냥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촬영현장에서 겪었던 다양한 얘기들을 해주면 잼있어 보인다고 무작정 이 길로 뛰어드는 젊은 친구들이 있어서 이제는 좀 삼가하는 편이에요. 저도 그렇게 시작하긴 했지만 워낙 힘든 일이고 승부를 보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 호기심으로 뛰어들 일은 아니에요. 저도 이제 슬슬 쉬운 일 찾아하는게 현실이니깐요. 그런데 말이죠. 체력도 체력이고 이젠 더 이상 노가다 못하겠다고 하루에 열번도 더 입방아를 찧다가도 돌아앉으면 또 비행기 티켓을 예약을 하고 있더라구요. 편집도 쉬엄쉬엄 못하겠더라구요. 최근에 사천위성방송(四川卫视)의 프로그램을 편집하고 있는데 남들이 한달 할 일을 날밤까며 한 열흘동안에 후다닥 해놓고 비행기 타고 귀가해요. 맨날 밤샘한다고 마누라가 나이 생각하며 몸을 살살 굴리라고 잔소리를 하다 못해 이제는 아파서 들어누우면 책임 안진다고 협박도 하는데, 그래도 살인청부업자 같은 버릇이 쉽게 바뀌질 않아요. 중독증세인가봐요. 하하~

  곽: 살인청부업자, 비유가 살벌하시네요. (웃음) 김피디님의 인생철학은요?

  김: 뭐 인생철학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방송이라는 제법 살벌한 생태계에서 살아남으려고 버득거리다 보니까 제 나름의 개똥철학이 생기긴 했어요. 그게 뭐냐면 직업 세계에서 아래 세 가지 중에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1. 남보다 빠르다.2. 남보다 싸다3. 남보다 잘한다셋 중에 하나만 있으면 굶어죽지는 않는다.셋 중에 두 개가 있으면 인정받으며 산다.셋을 다 가지고 있으면 세상을 지배한다.

  곽: 역시 경제학을 전공하신 분이라 “개똥철학”도 경제학적이군요(웃음).

  김: 경제학이라기보다 완벽주의 성향은 좀 있는거 같아요. 더군다나 상해라는 유도리없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더 훈련이 된거 같아요. 그걸 떠나서 40대 아저씨들 아무리 별 볼일 없는것처럼 보여도 개똥철학 하나씩은 다 갖고 있고 생존무기 하나쯤은 다 숨겨두고 있어요. 산중턱에 도착했으니 이제 잠간 허리를 펴고 살아온 인생 한번쯤은 돌아보고 정리를 해봐야 남은 길을 계속 갈 수 있으니깐요. 인생 전반전은 별 생각 없이 살아지는대로 쫓기듯 살았어도 후반전은 어떻게 살지 짧게라도 살아온 인생 점검 해보고 또 터벅터벅 다시 길을 떠나야죠. 허허~

  곽: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직업이 김피디님에게 어떤 매력이 있나요?

  김: 작년에 귀주에 소수민족 촬영차, 귀주 산골 할머니들이랑 옷다듬질을 했어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순박한 현지인들과 잠간이나마 어우러져 함께 하는 순간들이 제게는 힐링의 시간이었어요. 그때 소수민족인 수족 (水族)이 수공으로 만든 전통복장을 선물 받았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삼천원씩이나 한다고 해서 돌려드렸어요. 며칠씩 촬영을 하고 나면 낯도 코도 모르던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마음도 나눌 수 있고….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인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인거 같아요. PD라는 직업의 특징상 이런 인연의 범위를 훨씬 넓혀갈수 있다는건 굉장히 매력적인 특권이 아닐수 없죠. 아무래도 그런 매력에 끌려 이 고단하고 몸을 갉아먹는 일을 멈출 수 없나 봐요.

  일년의 절반을, 혹은 일년에서 3분의 2의 시간은 밖에서 보내며 인생의 상당수 시간을 역(車站)에서 보낸다는 김상민 PD는 어느날은 귀주의 소수민족들의 문화 속에 매료되기도 하고 어느날은 지진 현장에서 생사를 오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내몽골 초원에서 현지인들이 건네주는 군복외투를 걸치고 새벽 추위를 견디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네팔에서 꼬마스님들과 짖꿎은 장난을 해보기도 하고 베트남에서 맥주 한잔 기울이며 촬영 중의 에피소드를 안주삼아 스텝들과 노가리를 까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이런 육체적인 피곤함이 아니다. 매일 매일의 일정이 숨막히게 바쁜데, 가끔은 촬영에 변수가 생겼을 때다. 시간을 조정하고 동선을 바꾸고 다가오는 방송일정때문에 마음을 조이고…. 진행비가 왕창왕창 깨지는 소리도 들린다. 피말리는 전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노가다로 자칭하는 그 방송바닥을 빠져나올 기미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얼떨결에 들어섰다는 그 “샛길인생”길은 아직 꽤 이어질거 같고 그 샛길에서 주워올리는 “개똥철학”들은 잘 발효가 되어 그의 인생 후반전에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 같다. 그 인생 후반전에는 또 어떤 샛길에 들어설지는 모르겠지만 그 샛길은 분명 소중한 인연들과의 아름도 동행이 될 것이다.

    /중국조선어방송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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