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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초 정길운(오른쪽), 박찬구(왼쪽) 등 연변 민간문예 선배님들과 함께
그런데 전례없는 《문화대혁명》으로 리룡득선생 역시 잡귀신으로 몰리면서 민간문예 수집정리 권리마저 박탈당하게 되였다. 《문화대혁명》때문에 집안에 있던 허다한 책들은 부득불 파지로 모두 팔아버렸지만 장기간 애써 수집해온 민간문예자료들은 창고안에 움을 파고 잘 간수해두었다. 리룡득선생은 어느때든지 민간문예도 해볓을 볼 날이 꼭 올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리룡득선생은 문화대혁명초기에 글쓸 권리를 박탈당했으나 민간문예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유산이라는 신념만은 버리지 않았다. 그러했기에 민간문예수집사업을 비밀리에 그냥 견지해나갔고 문화혁명기간에도 수백편에 달하는 민담들을 수집했다.
문화대혁명이 결속된 후 리룡득선생은 감춰두었던 민간문예자료들과 비밀리에 수집했던 민담들을 정리하여 륙속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연변의 간행물들은 물론 성급,국가급 각종 간행물들에도 한어로 번역되여 륙속 발표되였다.
꾸준한 노력과 재능으로 리룡득선생은 농민으로부터 일약 현문련의 전직창작일군으로 발탁되였는데 《범에게 나래가 돋힌 격》으로 민간문예 수집정리사업을 본격적으로 밀고나갈수 있게 되였다.
지난 3월에 안도현로년사업위원회에서 주최하고 안도현조선족작가협회에서 협찬한 리룡득선생의 작품전시회에서는 선생이 50여년간 국내외의 신문잡지와 방송에 발표한 3200여편의 작품과 전국의 조선족이 살고있는 고장들을 찾아 수집정리한 민간이야기 200여편, 민요 800여수,《웃음보따리》 등 작품집 50여권, 번역작품집 50여권이 전시되였고 각급 정부와 단체로부터 수상한 허다한 영예증서와 상장들도 전시되였다.

리룡득선생이 다년간 수집정리해서 펴낸 민간문예 출판물들
민간문예수집정리사업에서 걸출한 성적을 올린 리룡득선생은 《세계명인록》, 《세계우수인재대전》, 《세계예술가명인록》, 《중국현대민간문예가사전》 등 35권에 달하는 국가급 명인록도서에 등재되였다. 리룡득선생은 2011년 2월, 중화인민공화국문학연구원으로부터 《중국우수공산당원문학예술공헌성과상》을 수여받는 등 다년간의 신근한 노력과 분투로 휘황찬란한 영예들을 따냈으며 조선족 민간문예 수집정리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명인으로 존대받고있다.
《장백산산수 지명전설집》(전4권) 머리말에서 류연산교수는 《리룡득선생은 력사의 기록자로서 손색이 없다. 리룡득선생은 평생을 바쳐 장백산에 얽힌 우리 조상들의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수집정리하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민간문예는 조선족전통문화의 중요한 내용의 하나입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생산과 생활속에서 부단히 창조하고 다듬어서 후손들에게 물려준 우리의 무형문화재이지요. 민간문예는 우리 조상들이 세세손손 쌓아올린 문명의 결실이며 현실생활에까지 영향을 주는 우리 민족의 령혼입니다. 이러한것을 스쳐지나버린다면 얼마나 아깝고 무책임한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제가 민간문예 수집정리사업을 지금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있는 원인입니다.》
리룡득선생은 지금도 《소방대가 불끄러가는》속도와 마음처럼 민간문예 수집정리사업에서 절박한 사명감과 의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출처: 길림신문, 책임편집: 장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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