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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재발견 - 한국 아이들 '중국어식'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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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3 09:50:27
 
     
 


언젠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어떤 삐딱한(?) 재중동포 지식인으로부터 한글을 폄하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글 문장에서 한자로 바꿀 수 있는 단어를 몽땅 다 한자로 바꾸고 나면 기껏 조사 외에 뭐가 남느냐는 것이었다. 그냥 듣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소리글자는 뜻글자처럼 요리 자체가 아니라 요리를 담는 그릇에 비유할 수 있어서 영어든 중국어든 스페인어든 뭐든 다 담을 수 있는 이치이니 뜻글자의 틀에다 소리글자를 꿰어 맞추지 마시라고 점잖게 일러 주었다. 그리고 한글 시 한 편을 소개해 주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님의 ‘선운사에서’이다. 그에게 예로 들려준 내 뜻은 한글은 한자를 포함한 외래어를 거의 또는 전혀 쓰지 않아도 되는 기능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즉 자체로 충분히 요리가 되기도 하지만 어휘의 풍성을 위해 그릇이 되기도 하는 한글의 유연성이었다.

외국인이 배우기 어려운 언어는 결코 과학적이지 않다거나 정형화되어 있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언어 고유의 표현체계가 다양하게 잘 발달되어 있다는 뜻이고 그런 까닭에 단순하지가 않아서 익히기가 어려울 뿐이다. 그리고 언어 간 친근성의 문제도 있다. 한국인이 러시아어나 아랍어보다는 일본어를 상대적으로 익히기 쉬운 이치이다. 한국어와 중국어는 언어 자체의 친근성은 없지만 두 나라가 긴 세월 어깨를 겯고 역사를 공유하다 보니 한국어 안에 한자어라는 무시할 수 없는 분량의 어휘 공간이 생겼다.

이미 내장된 공간을 새삼스레 구태여 거부할 필요는 없다. 충분히 활용하면서 어휘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한글 고유의 언어체계나 일정한 표현방식에 어긋나는 표현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어느 선생님’을 ‘누구 선생님’, ‘약을 먹었다’를 ‘약을 마셨다’로 표현하는 일본어식 표현은 일본어로 구사할 때는 정상이지만 한글로는 이상할 수밖에 없다.

모름지기 한국 아이라면 ‘고생을 먹었다(吃)’가 아니라 ‘고생을 했다’, ‘감동을 먹었다’가 아니라 ‘감동을 받았다/했다’로 표현할 때 정상적인 한국어 언어체계를 가진 한국 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환경에서 외국어에 매달리다 보니 불안정해진 한국어 언어체계를 가지게 되었거나 별 생각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중국어스러운 표현을 하는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런 글을 쓰고 있는데 복도 저편에서 또 이런 한국말이 들려온다. “우리 내일 빤톈(半天, half time)이야?” 하아, 그것 참! 얘들아, 이럴 땐 될 수 있는 대로 ‘오전수업’이나 ‘단축수업’이란 말을 쓰렴. 그래야 중국어를 배우지 않은 한국 친구들도 알아들을 수 있지 않겠니?

/박정태 (pjt00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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