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고도로 발전하고있는 글로벌사회에서 독서는 세계를 알게 하는 지름길이고 타인과의 융합,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촉진하는 촉매제이다.
최근년간 연변은 독서절을 만들었고 또 우리독서목록 추천하기, 책읽는 어린이되기, 연변대학독서절, 시화전 등 다양한 계렬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독서활동은 두손 들어 찬성할 일이지만 정작 가슴 아픈것은 우리의 가냘픈 독서량이다. 유태인은 1인 평균 1년 독서량이 56권이라는데 중국인은 일년 일인당 평균 4.3권의 책을 읽는다는 통계가 나왔다. 또한 그중에서 중국 조선족은 자기 작가들이 쓴 책을 몇권이나 읽는지 통계를 내기도 힘들다.
2008년 연길신화서점의 통계에 의하면 조선말로 된 책의 최고판매량이 1100권, 그것마저 성공담에 관한 서적이라고 한다.
더욱 한심한것은 연변작가협회 회원이 700여명을 웃도는데 고작 3개뿐인 우리말 순수문학지중 판매량이 겨우 500~600권인 잡지도 있다는것이다. 작가들부터 1년 주문액이 술 한끼 값밖에 안되는 책마저 사람마다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가끔씩 모여앉으면 인터넷을 원망하고 타인의 무지와 몽매를 비웃는것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물론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인쇄된 책들이 독자들과 멀어지고 단행본같은것이 출판되여도 밑지는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하나로 전반을 부인할수는 없다. 일본이 중국보다 인터넷이 뒤떨어진것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발표되기 바쁘게 불티가 나게 팔리고 ‘1Q84’는 3권이 발행되자 련속 3개월 서점이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대한 일본인들의 독서열조를 보면 결국 인터넷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것이 아니라 우리 작가들이 쓴 글이 읽을거리가 없어서 독서하지 않을가 하는 의심이 든다.
독자들의 애독을 받는 작품이라면 그 시대를 보여주어야 할것이며 인간의 애환을 담고 삶의 모습을 스케치한 즉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할수 있는 작품이여야 할것이다. 헌데 작가들이 독자를 무시하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면 독서절행사가 아무리 활발하게 진행된다고 해도 우리 민족 작가들이 설 자리는 여전히 없을것이다.
물론 독자들이 손으로 꼽아도 열손가락 안에밖에 들지 않는 우리말 서적과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데는 작가와 함께 편집부의 책임도 한몫 있다고 본다.
작품을 투고하면 3개월 이내에 채용통지가 없으면 다른데 투고해도 된다는 광고는 번듯하게 싣고는 정작 작품을 보내면 한강에 돌 던진 격이다. 그래서 퇴고로 알고 다른데 투고하면 결국 그때에야 발표되여 중복발표로 인한 독자들의 불만을 야기시키기고 작가의 형상을 흐리우는 일도 가끔 일어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10전까지만도 활발하게 진행되던 문학필회도 이젠 가물에 콩나듯 하고 있다. 문학필회는 작가와 편집부, 독자와의 뉴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모임이다. 하지만 경제난을 호소하면서 그런 필회들이 점점 적어진다는것은 작가와 편집부, 독자와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의미가 될것이다. 서로가 련결되지 못한다면 누가 책임감을 갖고 독서를 할가?
독서문화는 사회발전의 촉매제이다. 이젠 우리 작가들이 앞장서서 이런 촉매제를 만들어내고 신문이나 잡지들에서는 그것을 담아 우리 민족독자들의 곁에 다가가게 해야 할것이다.
문화가 발전해야 민족이 발전한다. 우수한 작가대오를 갖추는것이 독서를 위한 밑거름이 될것이며 독서하는 민족만이 이 시대 주인으로 떠오를것이다. 이제라도 진정 독서가 몸에 배인 민족으로 다시 태여나도록 시각을 바꾸고 ‘나’부터 행동에 옮겨보는것은 어떨가?
/구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