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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조선족 천주교회
http://hljxinwen.dbw.cn   2009-10-23 14:44:43
 
 
 
 
 

(흑룡강신문=하얼빈)할빈시천주교는 19세기말 중동철도 부설과 더불어 천주교중국인 신사들이 할빈에 모였고 뽈스까, 러시아 및 기타 국적을 가진 천주교신자들이 세계각지로부터 할빈에 와 천주교가 발전하게 되였다. 조선인천주교는 일찍 1920년대 도리구에 천주교교회당이 있었고 신자 50명이라는 력사기록이 있다.

해방후 할빈시 도외천주교회당에 조선족신부 김선영과 임만복이 있었다. 김선영은 1898년 조선에서 태여났다. 1905년 한문서당에 다녔고 1908년 서울천주교신학교를 다니면서 라틴문자, 철학과, 신학과와 종교과를 배웠다. 1932년 전교사로 되였다. 1946년부터 1951년 9월까지 할빈시도외천주당 본당신부로 있었다. 임만복은 1909년 조선에서 태여났다. 1923년 경상북도 대구신학원에 들어가 라틴문자, 철학과, 신학과 공부를 하고 1935년 전교사로 임명받았다. 1942년 흑룡강성 해룬현 해복진선목촌 천주교회 심부로 있다가 1949년 할빈시 도외천주교회 신부로 있었다.

문화대혁명전 할빈천주교 본당 신부 곽손신은 천주교성당에 다니는 조선족신도 3명이 있다고 하였다. 할빈조선족천주교회 전임회장 강순정(72세)은 “원래 길림성 쌍양현에서 살다가 1953년 할빈에 이사왔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천주교를 믿었으나 성당에 나가지 못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1983년 남강구 혁신가 천주당이 다시 문을 열게 되자 1∼2년 사이에 조선족신자 50여명으로 증가되였다. ”고 한다. 강순정을 이어 회장으로 있던 현상진(72세)로인은 1986년도부터 천주교를 믿고 개인가정에서 몰래 미사를 드리다가 1992년부터 성당에 다녔으며 1998년도부터 조선말로 미사를 드릴수 있게 되였다고 한다.

지금은 할빈시 남강구 동대직가 219에 있는 중국천주교 흑룡강교구 주교부 성당 2층에 100여명이 들어앉을수 있는 조선족성당을 두고 “할빈조선족천주교회”라 자칭하고 있다. 신자는 50여명이 있다. 그중 녀성이 90%를 차지하고 대부분이 60세이상의 할머니들이다. 매주일 조선말로 미사를 단독으로 드린다. 신부는 수화천주교회당 본당 리용철신부가 주일마다 자가용차를 타고 할빈에 와서 성사를 집행하고 미사를 드리며 강론한다.

할빈조선족천주교회  조직기구는 회장에  최영호, 총무에 박기병, 회계에 김영옥, 전례에 김옥순, 전교사 김태옥이다. 그들은  흑룡강성교구장의 직접적인 령도밑에서 독립자주하고 자기로 교회를 꾸리며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길을 걷고있으며 서로 존중하고 평등우호적이며 서로 교무를 간섭하지 않는 원칙에서 대외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할빈에 와 공부하고있는 한국 류학생 천주교 신자들도 이 교회에 와서 미사를 드린다.

조선민족의 항일영웅 안중근의사는 천주교 신자이다. 지금 할빈에서는 사회적으로 안중근의사를 숭모하고 있기에 천주교신자들은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할빈조선족천주교 신자가운데 안중근의사의 5촌 조카며느리 안로길(安路吉)이 있다. 안로길녀사는 1913년 3월 3일생으로 금년에 94세이다. 그는 안중근의사의 4촌 동생 안홍근의 아들 안무생의 처다. 안로길의 가정은 조부때부터 천주교를 신앙했다.

안로길은 1929년 16세때 부모를 따라 한국에서 북만의 방정현 조선농장에 이민하여왔다. 1930년 17세에 본 농장에 사는 19세나는 청년 안무생하고 결혼했다. 안로길의 본성은 차씨인데 안씨집에 시집갔기에 남편의 성을 타서 안씨라고 하였다.

1931년 봄 안로길부부는 해룬현해북진 선목촌으로 이사가 농사를 지었다. 당시 해북진에는 천주교가 성행되였다. 신자 2000여명 되여 “가톨릭부락”을 이루었고 교회에서 꾸리는 학교, 병원까지 있었다. 안로길부부는 진심으로 교회당에 다녔다. 일제통치시기에는 천주교에 대하여 “리용통제”정책을 썼고 친일분자를 배양하여 신자들을 박해했다. 남편 안무생은 1944년 8월 27일 일제주구 한씨와 엄씨놈에게 맞아죽었다. 안로길의 마음속에는 일제에 대한 증오심이 더욱더 강렬하였다.

안로길은 안무생하고 결혼하여 14년이 되도록 자식 하나 낳아보지 못했다. 홀로 살다가 해방을 맞아 1946년 10월에 홀몸으로 할빈에 이사와서 남의 빨래도 하고 복장도 만들어 생활을 유지해나갔다. 그는 당시 사회적으로 항일민족영웅 안중근의사에 대하여 중시하지 않고 안중근의 가문을 알아주지 않는것이 안타까와 하루는 태국기를 들고 할빈역전 광장과 도리공안분국 문앞에 가서 태국기를 흔들며 “안중근만세”를 불렀다. 그때는 한국을 남조선이라 부르고 중국의 적대국이였다. 공공장소에서 적대국의 태국기를 흔든것이 반혁명적행위로 취급되였다. 그리고 그때는 안중근만세를 부른다는것도 역시 엄중한 정치문제로 되였다.

1958년 1월 5일 안로길은 조선족 치마저고리를 입은채로 체포되여 도리공안분국으로 끌려갔다. 안로길은 법정에서 현행반혁명죄로 무기도형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였다. 1972년부터 내몽골 진래로개농장에 가서 로동개조를 하다가 1998년 9월에 할빈에 돌아오게 되였다. 지금은 진래로개농장에서 약간의 생활비를 대여주고 천주교회에서 보살펴주는 덕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유지해나가고있다.

/(할빈) 서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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