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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사회>조선족>하얼빈조선족백년사화
 
21렬사 기념비
http://hljxinwen.dbw.cn   2009-10-23 14:44:31
 
 
 
 
 

 (흑룡강신문=하얼빈)지금 할빈시렬사릉원의 남쪽구역에 '21 렬사지묘' 조선글로 새긴 렬사기념비가 우뚝 서있다. 여기에는 1946년 9월2일 할빈시교의 사리툰 서구에서 벌어진 토비들과의 혈전에서 장렬하게 희생된 조선족 21 렬사의 영령이 고이 잠들고 있다.

조선의용군 3지대는 1946년 4월28일 동북민주련군 송강군구의 형제부대들과 함께 할빈을 포위 공격하여 국민당의 손에서 할빈을 탈환하였다 력사적으로 이 날을 할빈이 해방한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장춘 심양등지는 여전히 국민당이 점령하고 있는것만큼 금방 해방된 할빈시와 그 주변의 정세는 의연히 복잡하고 적아 투쟁이 첨예하였다.

조선의용군 3지대는 몽땅 조선인 지휘원과 전사로 이루어진 부대이다. 이 지대는 3.000여명의 병력을 가지고있었다. 3지대는 정부의 충분한 신임을 받아 할빈에 들어온후 할빈시의 위수임무를 맡았다 동북국을 비롯한 성. 시의 중요한 당정기관을 수위하였으며 팽진. 진운.장수산. 종자운등 중앙과 성. 시의 령도동지들을 보위하였다. 3지대는 무기, 탄약, 약품, 복장 등 군수품 창고를 수비하였고 또 송화강철교, 발전소, 등 공장 기업소도 수비하였다. 3지대는 시내치안을 유지하기에 바쁘면서도 일부 병력을 교외구역에 보내여 토지개혁 운동을 보호하였다. 조선의용군 3지대 제3대대 7중대는 중대장 리영택 부중대장 박만근의 령솔하에 향방구에 주둔하면서 토지개혁운동을 보위하고있었다.

1946년 9월2일 날이였다. 점심때가 되여 올 무렵 중공향방구위서기였던 송신화는 사리툰 일대에 한무리의 토비가 나타나 강도행패를 부리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 이 정보는 그 일대에 나가 있는 민운공작대 대원이 전하여 온것이다. 송신화서기는 즉시 무장공작을 책임진 하경동지를 불러 그한테 무장대오를 거느리고 토비를 숙청하라고 지시하였다. 하경은 지체없이 중대장 리영택에게로 달려갔다.

긴급한 정보를 받은 리영택 중대장과 박만근 부중대장은 하경의 요구에따라 신속히 손을 씀으로서 놈들이 뺑소니 치기전에 섬멸해 버리자는 생각에서 앞뒤를 재여볼 사이도없이 인차 한개 소대 30여명 대원을 이끌고 정보를 가지고 온 민운공작대워을 길잡이로 하여 줄달음쳤다. 그들은 밭 곡식들이 한창 무르익은 벌판길을 거쳐 량쪽으로 지세가 높아져가는 후미진 지대로 들어갔다.

여기가 사리툰 서구이다. 높은 언덕사이의 골짜기인데 거기서 더 가야만 한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량쪽 언덕우에는 수수. 강냉이 등 밭곡식과 풀이 키넘게 자라고있었다. 리영택이 거느린 소부대는 바로 이 골짜기에 드러섰다. 교활한 토비들은 량쪽 언덕우로 뻗은 밭속에 숨어서 골짜기를 들어서는 우리 소부대를 눈아래 굽어보면서 총부리를 돌리고 있었다.

그 때는 농촌의 토지개혁이 금방 시작한 때였던만큼 위만 한간이나 악질지주 따위들은 민운공작대를 눈에든 가시처럼 여겼고 우리 당과 우리 군대를 원쑤로 보았다. 그들은 국민당이 빨리 오기를 고대하면서 토비들과 련통하였다. 정치토비 리화탕계통의 토비 150여명이 매복하여 우리의 소부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무리의 토비들이 왔다는 정보를 가지고 왔으며 길잡이로 나선 우리의 민운공작대 대원이란 자가 바로 토비와 내통한 반역자였다는것을 몰랐다. 서구 골짜기에 들어선 리영택의 소부대는 그만 적들의 포위망에 걸린 것이다. 갑자기 자지러지게 일어나는 총소리에 주변을 살펴본 리영택은 자기들이 적의 포위망에 들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숨어서 쏘는 적들의 돌연적인 기관총 총탄에 전사들이 넘어지기 시작했다 리영택은 전사들을 지휘하여 영용하게 혈전을 벌렸다 피투성이 된 전사들은 조이밭 고랑에 엎디어 포복전진하면서 맛불질하고 시야에 나타난 토비들을 쏘아 눕혔다. 하지만 중대장 리영택, 부중대장 박만근, 소대장 마×× 전사 리욱실. 장복주등 21명 동지들이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살아 돌아온 전사들의 입에서 이 놀라운 소식을 들은 관건 참모장과 류등 대대장이 전사들을 거느리고 전투현장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적들이 그림자를 감춘 후였다.

3지대 동무들의 회억에 의하면 렬사들은 모두<8.15>해방 후 할빈보안총대 조선독립대대 창건시기에 농촌에서 뛰여나온 끌끌한 청년들이였다. 빈한한 가정출신인 그들은 혁명승리에 대한 굳은 시념을 품고 목란, 통하, 상지등지에서 여러차레 토비소탕전에서 용감성을 떨친 동무들이였다. 중대장 리영택은 오상에서 온 사람이였다. 키는 1메터70좌우였고 매우 똑똑한 사람이였다. 그는 부대의 모든 간고한 일에는 앞장섰고 항상 자기에 대한 요구를 높이여 학습에 노력하고 사상작품과 수양을 높이기에 노력함으로서 자신을 경강한 혁명전사로 자라나게 하였다. 그러므로 일찍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고 불과 1년동안에 하나의 보통 전사로부터 소대장, 중대장의 직무를 맡기에 이르렀던것이다.

9월6일 21렬사의 추도식이 열렸다. 조선의용군 3지대의 3.000여명이 교도대대가 자리잡고있는 마가구비행장에 모였다. 3지대 정치위원 주덕해 정치부주임 정경호 최채등 령도동지들이 대렬앞에 엄숙히 서있었다 전사들의 눈에는 눈물이 번뜩였다.

정치부주임 정경호동지의 사회하에 추도식은 시작되였다. 새하얀 옷을 입은 녀성들이 21렬사의 신주를 받들고 추도회장에 들어섰다. 최채동지가 추도사를 읽었다. 정치위원 주덕해동지는 비방한 어조로“우리는 훌륭한 동지를 잃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부대의 혁명사업의 커다란 손실입니다. 우리는 렬사들이 다 못한 사업을 이어받아 끝까지 분투합시다”라고 호소하였다. 이어  온 장내는 하늘 땅을 뒤흔드는 구호소리가 련이어 터져 나왔다. '피값은 피로 갑아야 한다' '영웅들의 정신을 따라 배워 끝까지 혁명하자'

이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던 10여명의 부상자들은 마가구에 있는 조선의용군 3지대 위생대에 입원하여 대장 원일우 등 2명의 의사를 비롯한 전체 의무일꾼들의 밤낮 긴장한 응급수술과 치료를 받아 위험에서 구해냈다.

21렬사의 시신은 당시 할빈시 조선인공동묘지(러시아공동묘지에 있는 쏘련홍군 무덤 서쪽)에 21개의 관을 짜서 안장하였다. 그 우에 자그마한 돌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할빈시 조선인회에서는 해마다 청명이면 군중을 조직하여 렬사들의 무덤 앞에 술을 부어놓고 추모하였다.

1957년 청명절에 할빈시인민정부에서는 그들의 애국주의와 영웅주의 정신을 영원토록 기념하기 위하여 묘지 우에 '21 렬사지묘' 라고 새겨 넣었다. 조선의용군3지대는 1946년 봄에 동북민주련군 송강군구독립8단으로 개편되였다. 대내로는 여전히 조선의용군3지대 라고 하였다.

1958년 할빈시의 빈장개혁으로하여 러시아공동묘지와 조선공동묘지는 황산으로 옴겨가고 그 공동묘지를 문화공원으로 개조하다 보니 21렬사 기념비는 공원 서쪽에 홀로 서있게 되였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기념비는 관리하는 사람도 없고 하여 많이 파괴되였다.

할빈시에서 이름을 떨친 조선의용군3지대의 유물로서는 하나밖에 없는 이 귀중한 기념비를 영원히 잘 보존하기 위하여 할빈시정부의 동의을 받아 시민정국에서는 1975년 10월에 렬사들의 유골을 파서 작은 관을 짜서 각기 입관 시키고 기념탑과 같이 지금의 할빈렬사릉원으로 옮겨갔다.

/서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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