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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56년5월7일,송강성위에서 “조선문신문 창간에 관한 결정”하달. 1956년 7월5일, 흑룡강성위의 비준을 거쳐 흑룡강신문사의 모체인 조선문 목단강일보사 창사,1957년 3월 1일, 첫 창간호 《목단강일보》출간. 1961년 1월 29일 정간.

2. 1961년 10월 1일, 흑룡강성위와 동북국에 내린 중공 중앙의 4월 30일부 회시정신에 따라 《흑룡강일보》소속 《흑룡강일보(조선문주보)》를 할빈에서 창간. 4절지 4면 주간지. 초창기 편집기자 12명. 김강, 김호봉이 부총편집 담임.

3. 1963년1월1일, 주 3간으로 개간. 김강 부총편집이 하북 성위로 전근한 후 김호봉 부총편집이 주관, 1964년 윤응순을 부총편집으로 임명.

4. 1968년 4월부터 주 6간으로 개간, 편집기자 30여 명으로 증가. 문도홍, 윤응순, 김호봉, 김우종, 박손수 등이 지도부 주요성원으로 활약.

5. 70년대 들어 전반 보도가 차츰 '좌'적 로선이 빚어낸 혼란상태에서 벗어나 정상궤도에 오르기 시작. 기자 취재원고가 많아지고 농촌의 선진 경험, 선진 인물 보도가 대폭 증가. 사회보도, 교육보도 량이 급증. 1978년 10월 주임에 윤응순, 부주임에 김호봉, 리룡섭, 박손수, 홍만호가 임명되고 주임, 부주임과 박문주, 정운항 등으로 편집위원회 구성.

6. 당 11기 3중전회 전후인 70년대 말—80년대 초 “흑룡강신문”은 '실제에 접근하고 독자에 접근하고 생활에 접근'하며 민족특색을 살리는 것을 기본취지로 하는 신문 개혁을 남보다 한보 앞서 진행, 본 민족 보도를 주도로 하고 본 민족 보도면을 넓히면서 과감히 '금지구역'을 타파하고 사회보도의 새로운 경로를 개척. 배포부수 만부 가량에서 2만 300부로 급증.

7. 1983년 1월 1일, 흑룡강성위의 비준을 거쳐 “흑룡강 일보”에서 분가, 성위에서 직접 관리하는 성급 독립신문으로 부상. 그해 7월 1일 2절지 4면 《흑룡강신문》(큰 신문)으로 개간. 그 해부터 기자를 성외로, 국외로 대량 파견, '서장기행', '심수 기행', '광동기행', '신강기행'과 '일본견문','조선기행', '미국기 행'을 속속 련재. 바로 그 해부터 배포부수가 2만 3000부에서 4만 5000여부로 급증. 그 후 8년간 계속 그 수준 확보. 1984년 지도부 조정, 총편집에 윤응순, 부총편집에 홍만호, 박손수, 주현남, 김충일 담임.

8. 1985년 4월 1일부터 자매지 한어문 “치부정보신문 (致富信息報)”을 발행, 한동안 배포부수 17만부 확보.

9. 1986년 5월 13일, 흑룡강성위상무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본사가처급(處級)으로부터 부청급(副廳級)으로승격. 8월에 12층 새 사옥에 입주. 전국소수민족신문 련석회의에서 본사 경험을 소개. 1988년 성문명단위로 선정. 1988년부터 “흑룡강신문”을 최초로 해외에 배포.

10. 1989년부터 해외 동포 언론과 친선적인 래왕 확대, 선후하여 조선 “평양신문”, 한국의 “한국일보”,“중부매일”, “영남일보”,“세계일보”, 러시아의 “고려일보”, 미국의 “한국일보” 등과 친선교류관계 확립. 1989년부터 컴퓨터식자조판 도입, 신문을 옵세트로 인쇄. 1989년 윤응순이 퇴임한 후 홍만호가 총편집으로, 박손수, 주현남, 김충일, 정민철 (1991년 5월에 보충)을 부총편집으로 하는 새 지도부 구성.

11. 90년대 “흑룡강신문”은 동포사회의 관심사, 주요화제를 폭넓고도 깊이있게 다룬 기획보도, 계열보도, 심층보도를 주선으로 펴내여 동포사회 주목. 1993년부터 “평양소식”, “서울소식”을 특집으로 정기 발간. 1993년부터 한어문 잡지 “한국경제무역정보(韓國經貿信息)”(반월간)를 출판, 3년 후 정간. 1993년 박손수 퇴임. 김순호, 정만희, 허길록을 총편집 조리로 임명.

12. 1994년 한국지사 설립, 일요“한국특집” 4년간 배포. 1994년부터 해마다 한국통일원 후원으로 “신춘문예” 장편소설 련재.

13. 1997년 4월 흑룡강성위 선전부가 비준하고 산동성위 선전부가 동의하여 청도에 지사를 설립하고 본사 기자 파견. 그 해부터 “연해특집” 발간.

14. 2000년 《흑룡강신문》일간지 인터넷사이트 개통. 8월, 성정부의 지원금 450만 원으로 칼라인쇄기 구입, 《흑룡강신문》칼라인쇄 시작. 이와 관련 한국 해외동포재단 지원금 전달. 한광천, 박일을 총편집 조리로 임명.

15. 2001년 3월 7일 리진산이 사장 겸 총편집으로 부임. 리진산을 비롯 하여 한광천, 박일, 임국현, 정혜준 등 5명으로 지도부 구성.

16. 2002년 9월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발빠르게 변화, 발전하여 대도시 한겨레를 주독자로 한 주간지 《주일특간》창간, 이와 동시에《주일특간》인터넷사이트 개통.

17. 2006년 1월 중국 한겨레사회를 커버하는 대변지로, 멀티 미디어 리더로 도약하고자 인터넷 흑룡강신문 업그레이드판 개통.

18. 현재 흑룡강신문사 임직원 140명. 그중 편집, 기자 65명, 고급편집 5명, 주임편집기자 25명. 행정간부로 부청급 1명, 정처급 4명, 부처급 11명, 과급 20여명.

19. 2008년 4월 흑룡강성위성정부의 허가를 받고 흑룡강신문-한국판 한국에서 인쇄출판 시작.

20.2008년 9월10일 흑룡강성위 선전부 이진산 사장 은퇴신청 공식 인가. 흑룡강 신문사 지도부 조절.부총편집 한광천 사장,총편집 직무 대행.

21. 2008년 12월1일 흑룡강신문사 인쇄공장 철거 결정.

22.2009년 6월 18일, ‘흑룡강신문•한국판’이 새 창간호를 갖고 매기 12개 판면으로 주간 출판됨.

23.2010년 4월 전자신문부에 인원과 설비를 확충한 기초상에서 인터넷영상부를 구성하고 인터넷방송국 개시, 당해 7월 8일 ‘신판흑룡강신문사이트’ 업그레이드를 완료.

24.2010년 7월 29일, 한광천이 사장 겸 총편집으로 부임. 한광천사장을 비롯하여 박일부총편집, 임국현부총편집, 정혜준부사장이 지도부를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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